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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金斗漢, 1918년 5월 15일~1972년 11월 21일)은 서울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으로 1954년 5월 31일부터 1958년 5월 30일까지 제3대 국회의원(종로구 을)1965년 11월 10일부터 1967년 6월 30일까지 제6대 국회의원(용산구)을 지내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인 백야 김좌진의 아들이다. 그러나 김좌진의 아들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출처 필요] 김두한은 젊은 시절 우파 청년단체의 선두에 서서 좌파를 혹독히 진압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한국 전쟁 전후로 청년단체 활동을 그만두고 정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다.

생애 Edit

초기 생애와 폭력단 활동Edit

1918년 아버지 김좌진과 어머니 박계숙에서 태어난 그는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1926년 어머니 박계숙이 김좌진을 숨겨놓았다는 이유로 일본경찰에 끌려가게 되자 불우한 인생을 살았다. 그 후 1934년까지 사동옥에 원노인에게 맡겨지다가 1936년부터 폭력단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출처 필요]

반공 청년 활동Edit

1936년 19세때 종로에서 주먹패로 활동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해방 직후의 김두한의 정치적 성향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략 1946년을 기점으로 반공주의자로 변신한다. 해방 직후 한때 조선 공산당 전위 대장으로 포섭되어 활동하였으나 1945년 11월 말 우익으로 전향했다.

김구에게 선친 김좌진 장군이 적색테러의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게 되었다.[1] 이범석에게도 "너의 아버지를 죽인 자는 공산주의자"라는 소식을 접하였다.[2] 그뒤 염동진에게서도 비슷한 설득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3][4]

1946년 4월 9일 대한민주청년맹(대한민청)이 결성되고, 회장에 유진산, 명예회장에 이승만, 김구, 김규식를 선출할 때 김두한은 대한민청 감찰부장에 선출됐다.[3] 김두한은 백의사의 비밀단체 조직원이기도 했다.[3]

이후 김두한은 대한민주청년동맹(약칭 대한민청)의 실질적 지도자로 활동했다. 1947년 4월, 좌익이 주관하는 《제3전선》이라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던 시공관을 습격하여 3명의 좌익 인사를 납치하여 죽이는 사건을 주도하였다. 1947년 김두한은 근로인민당 당사를 빼앗아서 전국학련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3]

그에 따르면 여운형 저격을 위한 백의사의 결사대를 뽑을 때 한지근이 선발되었으며 7월 19일 하오 1시경 혜화동에서 몽양 여운형 사살을 자신이 지시했다고 하였다. 몽양 여운형 암살 전날 밤 김두한은 한지근에게 권총을 수교하고 악수를 했으며, 일본 장교용 권총 한 자루를 내주고 넘버를 수첩에 적었다고 한다. 이후 김두한은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에게 불려갔다고 한다.[5] 1948년 10월 4일 대한청년단이 결성되자 감찰국장 겸 건설국장이 됐다.[6]

정치 활동 Edit

1948년 10월 4일 대한청년단이 결성되자 감찰국장 겸 건설국장이 됐다.[6]

1954년 5월 10일 제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서울시 종로구 을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여운홍을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7] 그뒤 자유당에 입당하여 활동하다가 1965년 11월에는 제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서울특별시 용산구한국독립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 1967년 6월 30일까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그 뒤로 박정희의 독재에 맞서다가 1972년에 사망했다. 사후 의협심과 무용담이 회자화 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 장군의 아들, 야인시대 등의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국회 오물 투척 사건 사건 당시 국회 의사당에 인분을 투척하는 등 독특한 정치인생을 살았다.


국회 오물 투척 사건Edit

이 부분의 본문은 국회 오물투척사건입니다.

1966년 9월 22일 한국비료주식회사사카린밀수한 일로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 중 김두한이 국무위원들에게 미리 준비한 인분을 투척했다.

한국비료주식회사의 사카린 밀수 사건은 국내 굴지의 재벌인 삼성 재벌의 한국비료주식회사가 건설 자재를 가장해서 사카린을 밀수했다는 것이 1966년 9월 15일 경향신문을 통해 폭로되면서 언론계와 정치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는데, 이날 이틀째 속개된 삼성 재벌 밀수사건에 관한 대정부 질문에서 김두한 의원은 질문 도중 미리 준비해 온 오물통을 열어 국무위원석에 앉아 있던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 등 수 명의 각료들을 향해 던졌다.

사건 당일 이병철 한국비료 사장(삼성 그룹 회장)은 사카린 밀수사건과 관련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언론 및 학원 사업에서 손을 뗄 것을 선언하였다. 그후 이병철 사장은 헌납 교섭을 맡았던 장기영 부총리가 해임되자 개각 1주일 만인 1967년 10월 11일 한국비료 주식의 51%를 국가에 헌납했다. 김두한은 이후 정계에서 은퇴한 후인 1972년 11월 21일 향년 55세로 지병인 고혈압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사후 김두한의 활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야인시대, 영화 장군의 아들 시리즈 등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가족 관계 Edit

  • 아버지: 김좌진?,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입증된 것은 없다.)
  • 딸: 김을동, 대한민국의 탤런트 겸 영화배우, 정치인
  • 외손: 송일국, 배우
  • 외손: 송송이, 배우

함께 보기Edit

김두한을 연기한 배우들 Edit

참고 자료 Edit

  • 《매일신보》 1925년 9월 15일
  • 《매일신보》 1930년 2월 13일
  • 《조선일보》 1930년 3월 17일
  • 《중외일보》 1930년 2월 18일
  • 《중외일보》 1930년 5월 30일
  • 《말》 2003년 5월호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주석Edit

  1. 현대사를 바꾼 전쟁과 정치 : 전사를 통해 진단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김동주, 뿌리출판사, 2004) 67 페이지
  2. 인물로보는 항일무장투쟁사(역사문제연구소 지음, 역사비평사, 2006) 71페이지
  3. 3.0 3.1 3.2 3.3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1권〉(인물과사상사, 2004), 259~263쪽.
  4. 안기석,〈백의사 총사령 염동진: 김일성, 간담 서늘케 한 전설적 백색 테러리스트〉(신동아) 2001년 10월, 316~323쪽.
  5.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 사상사, 2004) 50~51쪽.
  6. 6.0 6.1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 사상사, 2004) 167~168쪽.
  7. 그의 깡패질은 독립운동이 아니었다 - 오마이뉴스
전 임
(종로구 갑)박순천
(종로구 을)오하영
제3대 국회의원(종로구 을)
1954년 5월 31일 - 1958년 5월 30일
무소속
종로구 갑: 윤보선
후 임
(종로구 갑)윤보선
(종로구 을)한근조
전 임
서민호
제6대 국회의원(용산구)
(보궐선거)
1965년 11월 10일 - 1967년 6월 30일
한국독립당
후 임
김원만
en:Kim Du-han

ja:金斗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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