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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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예술협회유치진을 중심으로 한 우익 연극인 단체였다. 조선연극동맹과는 대립하는 관계였다. 일제 강점기의 신파극 출신들은 주로 조선연극동맹에, 신극 종사자들은 주로 극예술협회로 몰렸다는 분석도 있다.

최승일 (1901년)은 경성부 에서 자라 배재고등보통학교 와 일본 니혼 대학 에서 수학했다. 1920년 일본에서 결성된 극예술협회 를 시작으로 좌익 유학생들이 조직한 북풍회 에 참가하고, 박영희 , 나도향 등과 함께 신청년 동인으로 활동했다.

김영팔 (1904년)은 일본에서 니혼 대학 에 재학 중이던 1920년 에 도쿄 유학생들이 결성한 극예술협회 에 창립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연극에 뜻을 두고 형설회순회극단이라는 이동 극단이 벌이는 순회 공연에 학생 배우로 출연하였다.

진우촌은 일제 강점기 말기에 동양극장 과 현대극장 에서 연극 작품을 발표하였고,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는 극예술협회 에 가담하였다. 작품으로 《암탉》, 《두뇌수술》, 《춘향전》(각색), 《피를 파는 사람들》등이 있다

이해랑은 광복후 현대극장 대표였던 유치진이 친일 의혹으로 활동이 뜸한 사이 1945년 극단 전선(全線)을 창립하고, 1946년 에는 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협회 의 전신인 극예술회 창립에 참가하며 우익 연극인들을 이끄는 인물로 부상했다.

이광래 (극작가)는 광복 후에는 극단 민예 를 조직해 우익 계열의 대표적인 연극인으로 부상했고, 이후 극단 신협 과 극예술협회 의 대표를 맡으며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다.

김백봉은 1958년 동남아 친선 예술사절단으로 순회 공연을 했고, 서울예술고등학교 강사·한국 무용가협회 이사·국제 극예술협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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